2015년 1월 1일, 조선일보 신년호 경제면 커버스토리에
스타트업 대표 다섯이 등장했다.
회사 이름은 막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대표가 누구인지 아는 일반인은 많지 않은 회사들이었다. 불과 6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서 ‘신화’로 불릴 만한 존재가 됐다. 철가방을 들고 사진 기자의 요구에 맞춰 깡총 뛰기를 반복했던 사람은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쇼핑백을 들고 어색한 웃음을 짓던 사람은 김범석 ‘쿠팡’ 대표였다. 마땅한 소품이 없어 돈이 그려진 공을 들었던 사람은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와 애니팡 인형을 든 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도 있었다.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누구나 이들처럼 부와 명성을 쌓고 싶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창업에 뛰어든 사람도 많다. 스타트업의 성공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이를 사업화하고 운영하는 능력, 옥석을 가려내는 투자자들에 달려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굳이 덧붙일 때 등장하는 것이 언론이다.
언론은 자신의 가능성과 실력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을 보증해 주고, 투자할 곳을 찾고 싶은 투자자들에게 투자처에 대한 힌트를 준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 언론이 ‘부스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언론을 경험해 보지 못한 창업자 상당수는 언론과의 관계를 회사 운영보다 더 어려운 숙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숙제를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언론을 만나기 전, 스스로 냉정하게 돌아보자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포부는 항상 거창하다. 본인이 망하거나 시장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패하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우선 언론을 접촉하거나 소개받기 전에 냉정하게 따져보자. “나와 내 스타트업이 과연 남들과 다르다면, 부각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자. 구체적으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만들었는지, 사업 모델은 무엇이 특별한지,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돼 있는지 같은 내용을 꼽을 수 있다.
각 질문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회사부터 챙겨야 한다. 특히 ‘어떻게든 할 수 있다’거나 ‘말할 수 없지만 계획이 있다’는 식으로 답변이 만들어진다면 언론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기를 권한다. 언론은 ‘논리적인 흐름’과 ‘인과관계’를 중시한다. 본인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내용을 기자에게 써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언론, 어떤 기자를 만날 것인가
수많은 스타트업이 있고, 창업자 개개인이 모두 다른 사람인 것처럼 언론과 기자 모두 제각각이다. 한국에는 전국 단위 종합신문만 10곳이 넘고, 경제지도 10곳은 된다. 여기에 인터넷 매체들까지 합치면 세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아무 매체에나 나온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도 기사를 실어주는 대가로 광고나 금전을 요구하는 곳이 있다. 이런 매체는 ‘사이비’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사이비는 더 많은 사이비를 부를 뿐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전문가이다. 언론홍보에 자신이 없다면 기업이나 개인과 언론을 연결해 주고, 홍보 컨설팅을 제공하는 홍보대행사들이 있다. 이들은 어떤 방식의 홍보가 적절한지, 어떤 매체에 나갈 가능성이 있는지 조언해 주고, 보도자료 작성이나 인터뷰 진행까지 도와주는 전문가 집단이다. 결정적으로 홍보대행사는 기업을 ‘고객’으로 여긴다. 여러 홍보대행사를 대상으로 조건이나 컨설팅 비용을 비교해도 홍보대행사는 이를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언론에 나가고 싶다면 가능한 큰 매체, 기자는 스타트업을 담당하는 기자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해도가 떨어지는 기자가 제대로 된 기사를 쓸 리가 없고, 스타트업을 다루지 않는 매체가 스타트업 기사를 갑자기 크게 쓰는 일도 없다. 이런 부분은 직접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다. 좋은 기사, 좋은 스토리는 누가 봐도 같은 평가가 내려진다. 신문이나 미디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부터 스타트업 기사라도 열심히 챙겨 읽자. 어떤 기자가 내가 만나야 하는 기자인지, 어떤 매체가 기사를 잘 쓰는지 알게 되는 것은 물론 내가 앞으로 어떤 얘기를 해야 하는지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배우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인맥도 중요하다. 이른바 ‘빅마우스’들이 있고, 이들은 대부분 소셜미디어 활동이나 대외활동에 적극적이다. 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잡아라. 기자들도 빅마우스의 의견을 중시한다.
🎙️언론에 무엇을 말할 것인가
스타트업은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기자나 매체가 스타트업의 기사를 꼭 써야 할 이유는 없다. ‘투자 유치’, ‘서비스 개시’ 같은 내용은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언론은 기본적으로 일반인이 보는 기사를 게재한다.
그렇다면 기자와 대중의 관심을 받는 기사는 어떤 것일까. 우선 창업자의 특이한 이력이 있다면 가장 좋다. 10여 차례 이상의 창업 경력을 가졌던 ‘하이퍼커넥트’ 안상일 대표, ‘자비스앤빌런즈’ 김범섭 대표 같은 사람들을 꼽을 수 있다.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거나 서비스 모델이 독특한 것도 화제를 모은다. ‘루닛’, ‘뷰노’처럼 경쟁력 있는 인공지능 업체, 반도체 스타트업을 지향하는 ‘세미파이브’나 ‘퓨리오사AI’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 밖에 원격 의료 같이 규제를 뛰어넘었거나 로봇처럼 남녀노소 구분 없이 좋아하는 아이템도 항상 잘 팔린다. 기자가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기사를 써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기 전에, ‘팔릴만한’ 내용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기자들은 좋은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항상 애쓰는 존재이다. 좋은 아이템을 버리고 무시하는 기자는 없다. 특히 언론에 나가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과대포장하는 것은 금물이다. 당장 기자 한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신문이나 인터넷에 남아있는 본인의 발언은 결국 부메랑이 된다. 스타트업 역시 사업이고 장사이다. 신용을 잃은 장사꾼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글 서두에 얘기했던 다섯 명의 창업자 가운데 성공신화를 쓰지 못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기자들이 평판을 조회하고 최대한 검증했지만 완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인지, 왜 실패했는지는 검색하면 바로 알게 된다. 언론을 통해 스타가 될 수 있지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진짜 자격을 갖춘 사람뿐이다.
✍️Writer
조선일보 산업부 박건형 기자 박건형 기자는 조선일보 IT 팀장을 맡아 전자, 통신, 인터넷, 게임, 스타트업계를 담당하고 있다. 과학전문기자, 실리콘밸리 특파원, 파리 순회특파원을 거쳐 국내 최초 과학전문섹션 이프(iF)를 창간했고, 현재는 테크전문섹션 ‘테크&비즈’ 편집장을 겸임하고 있다. 20년간 현장에서 스타트업이 상장하고, 유니콘을 거쳐 대기업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홍보가 막막한 스타트업에게 언론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전했다. |